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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

천연 염색, 어떤 식물이 좋은 염료일까?

by info-golife 2025. 5. 24.

1. 염색의 고전, 쪽잎 – ‘인디고’ 색을 품은 푸른 식물

천연 염색의 대표적인 식물로 쪽잎(Indigofera tinctoria)은 단연 빠질 수 없다. 전통적인 청색 염색의 재료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남미 등에서도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다. 쪽잎의 진정한 염색 능력은 식물 자체의 색이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인디고틴(indigotin)’이라는 색소에 있다. 쪽잎을 수확한 뒤 물에 담가 발효시키고, 이를 거품이 이는 발효액으로 만든 후 섬유에 입히고 공기 중에 산화시켜야 푸른빛이 발현된다. 이 산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옅은 녹색에서 깊고 선명한 남청색이 만들어지는 것이 쪽잎 염색의 핵심이다.

재미있는 점은 염색 과정 중의 온도와 발효 시간, 염색 횟수에 따라 색감의 농도와 깊이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 염색하면 연한 하늘색에 가깝지만, 여러 차례 반복하면 묵직하고 깊은 남색이나 거의 흑색에 가까운 남청색까지도 얻을 수 있다. 또한 면, 마, 비단, 울 등 섬유의 종류에 따라 색소가 고착되는 방식이 달라 같은 염료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색상이 연출된다. 이처럼 쪽잎은 그 자체로 염색 재료로서 깊이 있는 미감을 가지고 있으며, 발효라는 고유의 과정은 천연 염색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천연 염색, 어떤 식물이 좋은 염료일까?

 

2. 노란빛의 여운, 울금과 치자 – 생기 가득한 황색 염료 식물

식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색 중에서도 황색 계열은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면서도, 그 생기 넘치는 색감 때문에 널리 사랑받아왔다. 울금(강황)은 대표적인 황색 염료 식물이다. 커큐민(curcumin)이라는 색소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노란빛을 선명하게 내는데, 특히 면이나 마처럼 흡수성이 좋은 섬유에 사용하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금빛 노랑을 연출할 수 있다. 강황은 실제로 향신료로도 널리 쓰이며, 항균성과 방충 효과가 있어 실용성 면에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다른 대표 황색 염료는 치자열매(Gardenia jasminoides)다. 작고 단단한 노란 열매를 말려서 끓이면 진한 황색 물이 우러나는데, 그 색은 투명하면서도 밝아 자연광 아래서 더욱 빛난다. 치자는 염색력이 강해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발색이 가능하고, 반복 염색 없이도 고운 색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치자는 색소 농도에 따라 연한 레몬색에서 진한 주황에 가까운 노란색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제공해 디자인적 활용도가 높다. 이처럼 울금과 치자는 황색 계열의 색을 필요로 할 때 가장 효과적이고도 실용적인 천연 식물 염료다.

 

3. 자연의 갈색, 밤껍질과 커피 – 따뜻한 톤의 중성 계열 염료

갈색은 대지의 색, 나무의 색, 자연의 안정감을 상징하는 색이다. 천연 염색에서 갈색을 내기 위한 식물성 재료로 가장 손꼽히는 것이 밤껍질이다. 밤껍질에는 풍부한 탄닌이 포함되어 있어, 매염제 없이도 섬유에 잘 고착되며 차분하고도 깊은 갈색을 낼 수 있다. 특히 한국 전통 염색에서 밤껍질은 조용하고 은은한 톤을 위해 자주 사용되었으며, 반복 염색 시에는 짙은 적갈색이나 흑갈색까지도 발색된다.

더불어 커피도 현대 천연 염색에서 주목받는 재료다. 특히 음용 후 남는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하는 방식이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다. 커피로 염색한 천은 대체로 연갈색에서 진한 초콜릿 브라운에 이르는 색감을 띠며, 내추럴하고 빈티지한 감성을 자아낸다. 커피 찌꺼기는 물에 끓이거나 추출 후 농축하여 염료로 사용하며, 실크나 린넨 같은 밝은 소재일수록 색감이 더욱 명확히 발현된다. 밤껍질과 커피는 모두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중성 계열의 따뜻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식물성 염료로, 실내 인테리어 패브릭이나 의류에 자주 활용된다.

 

4. 꽃에서 피어난 색감, 홍화와 코치닐 – 분홍빛과 자주빛을 위한 식물성 재료

분홍색과 붉은색은 천연 염색에서 얻기 까다로운 색으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우리에게 이러한 색을 선물하는 식물들을 제공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홍화다. 홍화는 꽃잎 자체에 두 가지 색소를 가지고 있는데, 먼저 우러나는 것은 황색 계열이며, 이 색소를 제거한 뒤 알칼리 처리하면 진정한 적색 계열의 분홍빛 색소가 나온다. 특히 손이 많이 가고 양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급 염색 재료로 여겨지며, 염색 결과는 매우 투명하고 고운 빛깔로 나타난다.

또한, 홍화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천연 적색 염료로 코치닐(cochineal)이 있다. 코치닐은 식물이 아닌 선인장에 기생하는 곤충에서 추출되긴 하지만, 그 곤충이 식물에만 기생하며 자연 환경에서 채집되기 때문에 식물 기반 염색과 함께 분류되곤 한다. 코치닐 색소는 특히 진하고 선명한 분홍~보라색 계열의 색감을 내며, 수용성과 안정성이 뛰어나 반복 염색에서도 색 변화가 적다. 홍화가 여성스러운 분홍빛을 낼 수 있다면, 코치닐은 보다 강렬하고 예술적인 표현에 적합하다.